밸류룸
‘샬롱’은 유럽에서 응접실을 일컫던 말로, 주로 상류층이 사교·예술 교류를 펼치며 문화를 꽃피우던 공간을 말한다. 결은 조금 다르지만, 우리로 치면 재상댁 사랑방 같은 개념이랄까. 하여튼 살롱에는 그래서 언제나 예술인이, 청춘 남녀가, 명사가, 유력 인사가 쉼 없이 찾아 들었다. 전주에도 그런 곳 하나 있으면 좋겠다…라고 생각했다면, 흡족하라. 밸류룸이 있으니까.
아늑하고 우아한, 때로는 격렬한 질문들
전주에 살롱이라니. 잘못 들은건가 싶다면 다시 들을 것. 밸류룸은 전주에 있는 지역 문화 살롱이다. 살롱답게 문인들이, 예술인들이, 청년들이 기웃거린다. 미술과 독서, 토론과 명상, 전시와 비움, 삶과 죽음에 대한 고찰이 북적거린다. 하지만 번잡스럽지가 않다. 아늑하다. 고즈넉하다. 그러다 불현듯 격렬하다.
“저는 저희 팀을 컨시어지 그룹이라고 말해요. 호텔의 컨시어지처럼, 문화의 컨시어지가 되어서 우리 지역의 문화를 가이드하고 다독이며 교류하는 사람들이죠. 이를테면 사회와 생활사를 관장하는 컨시어지랄까요? 밸류룸 살롱은 그런 활동을 떠받는 공간이자 한 분야고요.”
보통 사람들은 세상을 딛고 살아가는 데는 익숙하지만, 삶을 딛고 생각하는 일은 낯설어한다. 나유진 팀장은 삶과 인문학적 고민, 그리고 철학에 대한 사유를 뭉텅뭉텅 풀어놓은 공간도, 방법론도 소멸된 전주의 문화적 환경에 안타까움을 느끼고 밸류룸을 탄생시켰다. 살롱은 이들이 생각하는 ‘컨시어지’로서의 첫 번째 걸음일 뿐, 총 세 걸음으로 완성되는 이들의 나아감은 전시를 거쳐 매거진에 종착한다.
살롱 밸류룸에 우리네 삶과 그 무게를 부어놓고, 협업 중인 전시카페 ‘시멘트’에 우리의 정서를 포박해 둔 다음, 마지막은 매거진 『Choose for what?』에 우리의 사유를 표본으로 채집하는 것. 어쩌면 밸류룸의 로드맵은 인생의 구성 성분을 병렬로 분해하는 새로운 해부 방식일지도 모른다.
“보통 저희끼리는 실존주의 라이프 스타일 매거진, 이라고 정의 내려요. 라이프 스타일에 관한 이야기를 저희가 직접 찾아 서술하고, 알고 싶은 사람의 이야기를 인터뷰 방식으로 발췌하죠. 편집기획과 디자인, 사진 촬영과 윤문, 그리고 교정·교열까지 다 스스로 진행 해요.”
산업디자인 전공자인 김가은, 신서애 팀원과 산업디자인 부전공자 나유진 팀장은 마음이 섞인 학우가 됐다. 서로에게 삶에 대한 질문을 던지다 보니 하나의 팀으로 묶였다. 전공을 살려 매거진의 디자인을 담당하고, 밸류룸에서 진행되는 각종 행사와 모임에 참석해 왔다. 이들을 분석하려면 일반적인 팀 조직도는 잘 맞지 않는다. 팀보다는 동인에 가까운 모습이라고 할까.
“밸류룸 자체가 팀원들의 개인적인 고민을 해소하려다 시작하게 된 프로젝트라서 사업 아이디어와 팀원의 정체성을 딱 구분하기 어려워요. 오히려 저희 팀의 아이덴티티를 사업적으로 형상화했다고 생각해요.”
고찰과 함의를 사업으로 바꿀 수 있을까?
밸류룸의 약점을 꼽자면 수익 구조다.
창업 동아리의 성격과는 조금은 어긋나 보이는 이들의 행보는 비즈니스 모델보다 인문학적 실험에 가까워 보였기 때문이다. 살롱이라는 ‘영업장’은 분명 존재하고, ‘매거진’이라는 상품이 존재하지만, 수익성에는 고개가 갸우뚱해질 수밖에 없는 것. 하지만 밸류룸의 목표는 프로덕트가 아니라 라이프 스타일 콘텐츠, 나아가 현대인이라면 누구나 고민하는 인생에 대한 근원적 고찰과 함의를 논의하는 유·무형적 플랫폼에 참여하는 ‘참가비’의 형태에 가깝다.
“종이 매체로 큰 수익을 거두거나, 살롱 자체로 비즈니스 모델을 구상하지는 않아요. 중요한 건 전주에 밸류룸 같은 교류의 공간이 없다는거죠. 삶과 철학, 예술과 환경 등 이야기를 논의하는 문화 콘텐츠를 지속적으로 만들어 선보이면서 우리지역 사람들의 잠재된 삶의 방향에 대한 고민 의식을 끄집어 낸다면 결국 밸류룸은 ‘컨시어지’가 될 수 있어요. 그러면 전시도, 살롱도, 매거진도 가치가 높은 아이템으로 바뀌는 거죠.”
밸류룸은 창업동아리 활동 기간 동안 독서 모임 클래스, 브레인 샤워 전시 행사, 잡지 발간 등 다양한 프로젝트를 수행했다. 이런 문화 사업들이 현재로서는 큰 수익성을 기대하기 힘들지만, 밸류룸의 바람대로 언젠가 이들이 마련한 프로젝트를 넉넉히 소비해줄 ‘살롱러’들이 생겨났을 때 비로소 부가가치가 탄생하리라는 설명이다.
나유진 팀장은 프로젝트 소비자들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확인한 것이 큰 수확이라고 말한다. 또 온갖 프로젝트를 기획하며 얻게 된 통찰력과 현실적인 문제 파악 능력도 큰 도움이 되었다. 무엇보다 밸류룸의 의지와 노력을 알아주는 사람들을 직접 만나 소통하게 된 것이 제일 값진 기억으로 남을 것 같다는 소감이다. 앞으로 밸류룸이 어떻게 전주를 바꿔나갈지 궁금해진다.
Step Forward
1. 문제 찾기
- 전주는 문화 생활 인프라가 부실하고 삶과 인문학적 사유, 인생 철학에 대해 고민하고 소통할 정서적 기반이 허술하다. 코로나 19 이후로는 타지로 가기 힘들어 더욱 고립되고 있다.
2. 문제 분석
- 관광도시답게 전주는 카페나 명소 등이 잘 가꾸어져 있지만, 문화 콘텐츠를 즐길만한 공간이 많지 않다. 특히 살롱 문화가 없어 인문학적인 보완이 시급하다는 결론을 내렸다.
3. 해결책 제시와 실행
- 우리의 삶에 필요한 가치를 탐색할 수 있는 다목적 살롱 운영과 매거진 발행, 전시 행사를 병행해 진행하고 문화적 토양을 배양할 수 있도록 여건 마련에 나섰다.
4. 아이디어 확장·개선
- 오프라인 전시를 온라인 라이브 방송으로 진행하여 지역 한계를 뛰어넘는 교류 활동을 펼쳤으나, 비대면 진행의 한계로 자유로운 Q&A 분위기로 진행된 점이 아쉬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