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History 2H 핵심인력 양성 사업단
전주 중노송동에 위치한 ‘기자촌’은 오래된 마을 임에도, 지역사와 생활상을 담은 기록을 거의 찾아볼 수 없는 지역이다. 재개발을 앞둔 이 마을이 사라지기 전의 모습을 남기기 위해, 역사문화콘 텐츠학과 K-History 2H 핵심인력 양성 사업단이 마을의 구석구석을 거닐었다.
세월에 스러져간 기자촌
1960년대 제44회 전국체전 무렵 기자들이 몰려 형성된 마을. 한때는 엘리트 지식인들이 살던 부촌으로, 골목골목 사람의 발소리가 끊이지 않았던 마을. 시간의 속도를 따라가지 못해 점점 낙후되어, 이제는 군데군데 외벽의 칠이 벗겨지고 뼈대가 허물어진 마을. 곧 한 권의 마을지에 담길 기자촌의 짧은 변천사이다.
전주에 대해 깊이 알고 싶다는 타지 출신의 학생, 역사학도로서 기록의 가치에 대해 누구보다 공감한다는 학생, 낙후된 지역을 개발하는 도시재생에 관심있다는 학생 등 역사문화콘텐츠학과에 재학 중인 9명의 학생이 리빙랩 프로젝트의 구성원이 되었다. 본격적인 리빙랩 프로젝트를 시작하기에 앞서, 학생들은 마을지를 만든 경험이 있는 박사와 전문사진작가를 초청해 마을지 제작을 주제로 강연을 들었다.
그들에게 마을 주민들을 인터뷰하는 방법과 태도, 촬영 기술을 배웠다. 그 뒤 기자촌을 드나들며 취재를 시작했다. 그렇다면 역사문화콘텐츠학과 학생들의 눈에 비친 기자촌은 어떤 마을일까?
현재 기자촌에는 텅 빈 폐가가 덩그러니 자리를 차지하거나 쓰레기 더미가 여기저기 쌓여있는 채로 방치되어 있다.
20여 년 전부터 기자촌이 재개발된다는 이야기가 마을 안팎에 오르내렸지만, 재개발을 둘러싸고 이권 다툼이 일며 불협화음만 들려왔다. 재개발조합 임원진 탄핵 소송 등 다사다난한 과정을 거치며 많은 사람들이 하나둘 기자촌을 떠나갔고, 점점 사람의 말소리조차 드물어졌다. 지금의 풍경마저 머지않아 사라지고, 43,000여 평의 지대에 2,200여 세대의 아파트 단지가 들어설 예정 이라고.
기자촌의 변천사를 찾아서 역사문화콘텐츠학과 K-History 2H 핵심인력 양성 사업단은 되도록 많은 자료들을 수집하려 했으나, 기록을 거의 찾을 수 없었다. 고려시대부터 조선시대의 고지도와 1980년대부터 촬영된 항공사진, 신문기사와 인터뷰 자료, 영화나 드라마 속 장면 등을 샅샅이 모아서 10년 단위로 지역의 변화상을 실었다.
현재의 풍경은 학생들이 직접 촬영했다. 하지만 이것으로는 턱없이 부족했다. 오래 전부터 기자촌에 살던 주민들이 개인적으로 소지한 자료와 기억을 보탠다면 기록물의 완성도를 높일 수 있겠지만, 재개발 조합과 기자촌 주민들과의 갈등으로 인한 일정 지체, 그리고 코로나19 확산까지 더해져 주민들에게 접근하는 것조차 불가능했다. 지역 사람들과의 연대 없이 외부인의 시선으로만 기록을 남기는 것에 한계를 느꼈다.
수소문 끝에 젊을 적에 전북일보 기자로 활동한 뒤 수십 년에 걸쳐 기자촌에 살고 있는 지역민을 만날 수 있었다. 그와의 인터뷰를 통해, 지역에 실제로 살았던 사람들과 외부에서 바라본 사람들의 생각은 다를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다양한 지역민을 만나지 못하는 상황에 대한 안타까움이 짙어졌다. 이렇듯 제약이 많은 상황에서도 학생들은 온몸으로 취재에 임했다. 기자촌의 전체 풍경을 담기 위해 아파트 옥상에 올라가고, 골목 골목 기자촌을 누비는 동안 학생들의 시야가 넓어졌다. 역사학도로서 마음가짐을 새로이 했으며, 다양한 관점으로 세상을 바라보게 되었다. 한 학생은 “내가 살고 있는 주변 지역이 아닌, 여러 마을을 돌아 보게 되었고, 그곳에 사는 주민들의 삶의 가치도 깨닫게 되었다.” 라고 소감을 전했다. 사람에 대한 이해가 깊어진 것이다.
기록, 추억을 재생하는 일
현재 기자촌에는 낡은 건물을 리모델링해서 창작공간으로 활용하는 젊은 작가와 예술인들이 더러 있다. 재개발로 인해 이들의 터마저 빼앗게 된다는 생각에 이르자 개발에 대한 회의감이 들기도 했다. 하지만 마을사람들의 안전과 편의를 생각하면 개발은 불가피한 일.
이렇듯 한 마을 안에는 여러 입장과 이해 관계가 얽혀 있었다. 역사문화콘텐츠학과 K-History 2H 핵심인력 양성 사업단이 할 수. 있는 일은, 가능한 한 자세한 기록을 가시적인 형태로 남기는 것 일 터였다. 100페이지 내외로 제작된 마을지는 새로 들어선 아파트의 사무실이나 주민센터 등에 공유되어, 앞으로 지역사를 연구하는 이들을 위한 자료로 활용될 예정이다.
‘기록하지 않으면 사라진다’는 말이 있다. 시대가 변하고 공간이 변하는 것을 막을 수는 없을지라도, 그 모습을 남기는 한 그곳이 지녔던 의미까지 사라지지는 않을 테다. 기록하는 일은, 한 때 존재했던 장소에 대한 예의이며 사라짐에 대한 애도가 아닐까? 과거와 오늘을 공생케 하고, 그 사이의 추억을 재생시킬 ‘기자촌 마을지’ 가 세상에 나올 날을 손꼽아 기다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