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고독이기에, 외면하지 않았다

학생지원 리빙랩 프로젝트

사람은 누구나 죽는다. 우리는 죽음의 당위성만큼, 인생의 마지막 프레임에 불편함을 곁들이려고 하지 않는다. 그러나 세상에는 누구도 곁에 두지 못하고 홀로 죽음을 맞는 ‘고독사’가 존재하고, 이 외로운 마지막을 낱낱이 들여다보고 해결의 실마리를 더해 줄 조명자가 반드시 필요하다. RAW팀이 뷰파인더에 담고 싶은 이야기다.

고독은 우리 사회의 ‘공유 공포’다

사회 문제에 관심이 많은 사람도 고독사에 대해서는 입을 쉬이 열지 못한다. 죽음은 언제나 개인의 종말이고, 개인주의에 길든 세상에서 한 개인의 마지막을 토론 거리로 만드는 것은 예민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런 ‘의식적인 도피’가 무럭무럭 배양해낸 대한민국의 고독사 문제는 심각한 상황이다.

RAW팀은 바로 이런 현실에 귀를 기울였다.

“처음에 학과 홍보를 통해 리빙랩을 알게 되면서부터 고독사 이야기를 하고 싶었어요. 평소에 사회 문제를 자주 살펴보고 있었는데, 전주에서만도 1년이면 고독사가 10회정도 발생한다고 하더라고요. 바꾸어 말하면 올해도 10명은 외롭게 돌아가셔야 한다는 이야기가 되죠. 그리고 그 당사자가 미래의 내가 아니란 보장은 없는 거잖아요. 그러니까 우리 모두가 공유하는 공포라고나 할까요?”

윤호진 팀장의 말 속에는 뼈가 가득하다. 고독사를 방치하게 된 근본적인 원인이 ‘남의 일’이란 인식 탓인 걸 부정할 수 없다는 말이다. 물론 기존에도 고독사 문제를 다룬 다큐멘터리나 시사 토론회는 종종 있었지만, 이들은 기존 접근방식이 놓친 ‘대중성’에 주목했다.

“숭고하고 무겁기만한 풀이 방식으로는 고독사 문제를 사람들에게 알리고 개선하기에 한계가 명확해 보였어요. 더 대중적이고 효과적으로 관심을 유도하려면 장르적인 솔루션이 필요하다고 판단했죠. 그래서 영화를 선택했어요. 영화인이라서가 아니라, 영화가 맞아서 영화라는 해답지를 내놓은 거죠.”

우리 지역, 그러니까 호남의 문화도 이들의 관심 대상이었다. 본디 농경 문화권이기에 품앗이를 비롯해 끈끈한 지역 공동체가 뿌리내렸던 전북이지만, 산업화를 거치며 모든 연결고리가 부서져 파편화된 탓에 결국 고독을 예방할 수 있는 장치들이 무력화되었다는 분석을 도출했다. 또 고독사가 대부분 40~60대 남성들에게서 발생한다는 점도 RAW팀의 마음을 무겁게 했다. 우리 시대 아버지들은 너무도 외롭게 죽고 있었다.

사람은 누구나 죽는다.

우리는 죽음의 당위성만큼, 인생의 마지막 프레임에 불편함을 곁들이려고 하지 않는다. 그러나 세상에는 누구도 곁에 두지 못하고 홀로 죽음을 맞는 ‘고독사’가 존재하고, 이 외로운 마지막을 낱낱이 들여다보고 해결의 실마리를 더해 줄 조명자가 반드시 필요하다. RAW팀이 뷰파인더에 담고 싶은 이야기다.

개인의 존엄이 ‘유실’된 세상, 그 이면을 쫒다

이들은 이러한 ‘공유 공포’를 단편영화를 제작해 세상에 알리겠다는 목표를 세웠다.

작품명은 『유실』.

고독사를 맞이한 집을 청소하는 특수 청소 업체 종사자를 주인공으로 설정하고, 청소 과정에서 얻은 금품을 숨기게 되면서 일어나는 일을 그렸다.

특수청소 업자라는 캐릭터도 신선하지만, 스릴러 픽션 줄거리를 내러티브로 사용하면서 기존 고독사를 조명한 매체들과는 다른 접근법을 시도한 점이 특징이다.

방향이 정해지자 시나리오와 연출, 프로듀싱, 편집, 촬영까지 여느 영화 제작팀에 비견해도 부족함 없는 멤버들의 능력이 마음껏 발휘되기 시작했다. 시나리오를 완성하고 전문 배우를 섭외한 다음, 전라북도 내 촬영지를 물색하고 미술 작업이 척척 진행됐다. 코로나19로 인해 중간중간 촬영이 지연되고 팀내 갈등이 생기며 위기를 맞기도 했지만, 전체적으로 제작 기간 3개월을 알뜰히 채워 영화를 완성해나갔다.

“정말 살얼음판같은 상황도 많이 겪었죠. 배우분들 오디션도 화상으로 진행했고, 촬영 전날까지도 방역 상황을 예의주시해가며 준비했어요. 스태프만 20명 넘게 동원되니 방역 지침을 철저히 지키는 데 노력을 기울였고요. 중간에 멤버들 간 관계불화로 팀을 나간 인원도 있어서 정신적으로 큰 좌절도 겪어야 했는데, 절치부심해서 촬영을 끝까지 완수했어요.”

촬영을 전담한 임민섭 팀원은 악전고투 속에서도 톱니바퀴처럼 자신의 자리에서 ‘제대로 움직여준’ 모든 팀원들에게 큰 위로를 받았다. 스태프 대부분이 영화방송학과 학우들이었는데, 리빙랩의 취지에 공감하고 뜻깊은 영화를 만든다는 데 큰 열정을 쏟아부어준 점도 RAW팀에게 힘이 되었다.

“영화가 말하는 메시지도 결국 이런 거예요. 사람 본연의 가치와 본질이 물질로 치환되는 형태, 타인의 죽음이 개인의 비극으로 축소되는 일상에 대한 적나라한 추적이랄까요. 적어도 우리가 고독사를 함께 이야기하고 마음을 나눠 쓴다면, 지금보다는 나은 세상에 조금 더 가까워지리라는 반어적 연출인 거죠. 영화 메시지가 그렇듯, 영화 제작 기간 동안 저희가 고생을 극복하고 갈등을 해결하는 과정에서도 같은 깨달음을 얻었죠. 우리가 우리를 유실하지 않았기에 영화가 나올 수 있었다고 생각해요.”


Step Forward

1. 문제 찾기

  • 우리나라에서 나날이 늘어만 가는 고독사, 이제는 남이 아니라 우리 모두의 문제라는 것을 알리고 경각심을 얻을 수 있도록 해야 한다.

2. 문제 분석

  • 고독사의 여러 원인 중 1인 가구 증가에 대한 고찰을 시작했고, 소통과 공감을 단절시키는 이기심과 인간 존중의 ‘유실’에 대해 분석을 시작했다.

3. 해결책 제시와 실행

  • 거시적인 사회 시스템 문제를 지적하기보다는, 개개인의 이기심과 물질 만능주의를 스토리텔링을 통해 영화로 제작하여 대중성을 확보하는 방향을 골랐다.

4. 아이디어 확장·개선

  • 스릴러 장르로 대중적 관심을 유도하여 고독사 문제를 ‘이야깃거리’로 떠오르게 한 만큼, 다음 단계로 더 진중하고 날카로운 메시지를 담은 작품을 만들어 선보이고자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