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덕, 한 아름

세상을 잊는 아픔, 심장으로 달래다

학생지원 리빙랩 프로젝트

자아의 상실. 누군가는 치매를 이렇게 표현했다. 나라는 존재가 한 토막씩 무無로 증발하는 과정을 생생히 겪어야 하기에 치매는 환자 당사자에게도, 보호자에게도 큰 비극으로 다가온다. 순덕, 한 아름 팀은 담담하게, 그러나 정밀하게 이 슬픔을 달래고 싶었다.

따뜻한 마음으로 치매를 바라보다

비극을 희극으로 치환하기는 쉽다.

세상에는 블랙 코미디라는 장르가 존재하니까. 하지만 비극을 일상으로, 따뜻함으로, 포근함으로 탈바꿈시키기는 어렵다. 자칫하면 비극의 당사자로부터 격리된 ‘뜬구름’ 잡는 소리가 되거나, 비극 자체가 가진 엄중한 사연들을 희석시킬 수 있어서다.

순덕, 한 아름 팀의 시도가 대단한 점이 이것이다. 치매라는 비극을 일상의 페이지에 끼워 넣고 따뜻한 심장의 온도로 제법 성숙하게 풀어내는 해결법을 골랐기 때문이다. 영화방송학과 학생들로 구성된 이 팀은 단편영화를 제작해 치매를 ‘해결’하려고 들지 않고 받아들이도록 유도하는, 능숙하고 진지한 혁신 솔루션을 내놨다.

“저희 할아버지께서 치매를 겪다 돌아가셔서, 저는 치매 자체가 피상적인 개념이 아니라 살갗에 와닿는 현실이었어요. 보통은 치매로 인해 벌어지는 마음 아픈 상황들을 떠올리기 쉽지만, 저는 할아버지와 함께 만든 추억이 가장 많이 생각나더라고요. 이런 주관적인 경험을 객관적인 감동으로 전해보고 싶었어요. 누구에게나 찾아올 수 있는 현실이기에 절망하지 않고 딛는 방법을 찾아내야 하니까요.”

김진아 팀장은 처음에 치매 예방 어플리케이션을 만들고 싶었다. 그러나 최소 수백에서 최대 수천만 원에 달하는 제작비
를 감당할 수 없는 데다, 앱 제작 기술도 부족해 과감히 본인의 전공 분야인 영화로 방향을 틀었다.

영화 전공자로서 영화가 가진 힘을 잘 알고, 치매라는 소재를 담담한 연출로 풀어낸다면 좋은 메시지를 전달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서다.

“팀 이름인 순덕, 한 아름은 두 주인공 이름이자 영화 이름이기도 해요. 저희 영화는 치매에 걸린 할머니 순덕과 손녀 아름이 소소한 일상 속에서 치매를 수용하고 소중한 추억을 만들어가는 과정을 그리는 내용인데, 순덕과 아름의 삶과 살아나감을 관객들이 차분히 경험하고 치매를 버텨가는 마음가짐을 느끼도록 하는 거죠.”

시나리오를 작성한 정서희 팀원은 삶과 치매를 담백하지만 따뜻하게 서술하는 작품을 만들고 싶었다. 치매에 걸린 사실을 알고 요양병원에 입원하려는 순덕, 마치 친구처럼 순덕을 대하는 아름의 격의 없고 가식 없는 일상사가 우리 세상의 비극성을 조금 희석하고 모두의 체온을 복돋아 줄 수 있길 희망했다. 그러니까 『순덕, 한 아름』의 이야기는 사회의 혁신이 거창한 제도 변화보다는 사람과 사람의 마음끼리 ‘공명 주파수’를 일치시키는 과정에서 출발한다는 메시지를 던진 셈이다.

시선이 바뀌었을 때, 세상은 한 컷씩 달라진다

리빙랩에 참여한 팀이라면 “우리의 솔루션이 합당한 방식일까?“라는 고민을 자주하게 된다.

순덕, 한 아름 역시 그랬다. 과연 영화가, 영상이 세상을 바꾸는 데 어떤 역할을 할 수 있느냐는 근본적인 회의감도 들었다. 처음 기획했던 치매 예상 어플리케이션에 비하면, 너무도 ’하드 파워‘가 부족하지 않냐는 생각이 들었던 것.

“영화는 수치화하기 어렵잖아요. 관객 수나 흥행 수익 같은 지표 말고, 세상을 어떻게 바꾸었나요? 하는 질문에 몇 명에게 이만큼의 변화가 있었습니다, 하고 대답하기 곤란해요. 하지만 영화를 만들면서 확신을 얻었어요. 제작진 중에서도 치매에 대한 인식이 바뀐 사람이 있고, 적어도 우리가 시선을 약간은 바꿀 수 있겠구나 하는 마음이 들었죠.”

치매를 ‘적나라하게’ 드러내며 강렬한 메시지를 던진 작품은 많다. 영화, 광고, 드라마 등 치매는 그동안 다양한 매체에서 극적 긴장감을 높이는 용도로, 사회적 문제 의식을 부각시키는 함의로 여러 번 활용됐다. 따지고 보면 순덕, 한 아름은 이러한 매체들보다는 훨씬 ‘돌려 말하기’에 근접한 이야기 구조를 골랐다. 비유하자면 직렬보다는 병렬에 가까운 솔루션이랄까.

영화 말고 동영상 캠페인을 진행하면 어떻겠느냐는 의견도 있었지만, 전달력에 있어서 영화만큼 강한 분야가 없다는 결론을 얻었다. 그리고 그 결론은 틀리지 않았다. 많은 사람이 좋은 감상평을 보내준 덕이다. 이들은 앞으로도 치매는 물론 여러 사회 문제의 인식을 전환할 수 있는 다양한 영상 콘텐츠를 제작할 계획이다.

향후 취업을 해도 팀을 유지하면서 본업과 병행해 프로젝트를 이어나가고 싶다는 포부다.

“저희가 치매를 해결할 방법을 찾기는 어렵죠. 하지만 치매에 대한 시선을 조금은 바꿀 수는 있어요. 그저 비극적인 사연으로만 치부되는 치매를 우리의 일상 속 경험으로 환원시켜서 편안한 마음으로 치매를 이야기하고 싶어요. 이번에 치매를 따뜻한 시선으로 바라보게 했다면, 다음 영화로 치매에 대한 또 다른 이야기를 전달할 수 있을 거예요. 차근차근 바꿔 나가야죠.”


Step Forward

1. 문제 찾기

  • 치매는 완치가 어려운 질병이며, 치매 환자는 물론 가족들에게도 큰 고통을 주는 병이다. 이런 현실을 그저 비극으로만 느끼며 좌절하기보다는, 담담하고 일상적인 관점에서 받아들이는 인식 전환이 필요하다.

2. 문제 분석

  • 전문적인 치매 관련 분석과 치료법, 대책은 이미 많이 존재한다. 부족한 것은 치매의 사회적 인식을 개선하고 치매 환자와 가족들의 마음을 어루만지는 콘텐츠다.

3. 해결책 제시와 실행

  • 영화 전공 지식을 최대한 활용해 감성적인 영역에서 치매를 소재로 활용했다. 지식보다는 감정을 전달하는 영화를 만들어 우리 사회의 마음을 움직여보기로 했다.

4. 아이디어 확장·개선

  • 치매를 소재로 한 더 다양한 영상을 만들어 배포하고자 한다. 교육·다큐·르포 등 장르와 형태를 넘어 영상을 제작하고 꾸준히 혁신을 이어나감으로써 치매 환자들이 찾을 수 있는 행복과 마음의 위안을 선사하고 싶다.